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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술패권 우선vs.반세계화 관철… ‘미국 우선주의’ 본질은?
분류 주간무역뉴스
출처
등록일 2025-01-09
조회수 44
내용
‘트럼프 깐부’ 실리콘밸리에 필수적인 이공계 외노자 고용
기존 지지층 “내국인 노동자 고용 우선” 의제와 정면충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을 앞두고 핵심 지지자들 간 갈등에 직면했다. 바로 ‘H-1B 비자’ 프로그램에 대한 균열이다. 이는 트럼프 진영에서 ‘내전’으로 불리며 오늘날 미 공화당의 가장 심각한 정체성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H-1B 비자는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용 취업 비자로, 조건이 까다롭지만 일단 획득하면 영주권 취득까지 진행할 수 있는 제도다. 이는 단순히 외노자에 대한 문호 개방 문제를 넘어서 오늘날 미국에 집권할 새 보수 진영의 정체성을 규정할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의 전통적 지지층에서 외치는 대표적인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강력한 반세계화 메시지이기도 했다. MAGA는 이민을 합법적이든 아니든 미국의 일자리와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정책 의제를 주도하는 핵심 이념이었다.

당시 MAGA를 외치는 백인 저학력 블루칼라 노동자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트럼프는 중남미에서 오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강력하게 차단하고 중국과 멕시코가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레토릭으로 표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는 고학력 이민자나 해외 공장이 필요한 기술기업가들과 억만장자들이 한몫했다. 이들은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수한 해외 기술인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처럼 양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만큼 트럼프 2기 정책의 무게추가 어느 쪽에 기울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갈등의 시작점은 지난해 12월 22일 트럼프가 인도 국적의 기술 전문가 스리람 크리슈난을 인공지능 선임 고문으로 지명한 것이었다. 이 결정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찬사를, 트럼프 전통 지지층에서는 비난을 받았다. 크리슈난이 법적인 고숙련 이민자 제한을 없애자는 주장을 한 것을 두고 트럼프 지지자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른바 MAGA 내전(Civil war)이다.

▲트럼프의 전통적 지지층에서 외치는 대표적인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월 6일 핵심 경합주인 위스콘신주 주노의 닷지 카운티 공항에서 MAGA 모자를 쓰고 연설하는 모습. [주노=AP/뉴시스]



●억만장자들의 세계화냐, 노동자들의 반세계화냐 = 로라 루머와 니키 헤일리, 스티브 배넌 같은 MAGA 순혈주의자들은 H-1B 비자를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반역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나 비벡 라마스와미 같은 공화당 내 실리콘밸리 진영에서는 이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필요한 미국의 비밀 무기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일단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 2016년 H-1B 비자에 대해 ‘남용(Abuse)’이라고 혹평했던 것이 무색하게 9년이 지난 지금은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며 말을 바꾸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H-1B 비자 신청 거부율은 24%까지 치솟았으며, 이는 오바마 시대의 5~8%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H-1B 비자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였다. 일각에서 H-1B 비자는 미국 국내 인재를 채용할 때보다 훨씬 더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임금으로도 우수한 기술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도구로 일컬어진다. 이민자들은 체류 자격이 일자리에 묶여 있기에 급여와 근로 조건 협상에서 내국인보다 불리하기 때문이다.

미 언론 CNBC에 따르면 테슬라는 우수한 외국 인재를 고용하기 위해 2024년에만 724건의 H-1B 비자를 신청했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정부효율부 장관 내정자인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 필요한 엔지니어 수가 현존하는 인력의 두 배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란히 섰던 생명공학 분야의 억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는 공화당 내에서 더 많은 이공계 숙련 이민자 수용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인사 중 하나이며,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부를 이끄는 공동 수장이기도 하다. 라마스와미는 이번 논쟁에서 미국인들이 게으르고 경박하며 TV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정부효율부 파트너를 비호하고 나선 일론 머스크는 전통적 MAGA 강경파들을 “혐오적 회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경멸스러운 바보들”이라고 부르며 공화당에서 제명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매수한 소셜 미디어 사이트 ‘X’에서 라마스와미를 비판하는 트럼프 전통 지지자들은 하루아침에 프리미엄 콘텐츠인 ‘파란 딱지’ 자격을 상실했다.

대신 X에서는 미국인들의 전통문화가 수학 올림피아드 참가자보다 고교 미식축구 쿼터백을 중시한다는 식의 비판이 도마에 올랐다. 결국, 전통적 MAGA 지지자이자 극우 저널리스트인 로라 루머는 14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X 계정에서 스리람 크리슈난을 비난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CNBC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72%가 외노자 프로그램에 반대하며, 중도층에서는 63%,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47%가 반대한다. 어느 정당을 지지해도 외국 인재 유치에 타격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실리콘밸리는 과감하게 트럼프의 든든한 후원자로 행세했고, 그 결과 트럼프는 인도 기술 이민에 대해 이전 임기에서보다 관대한 레토릭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트럼프가 세계화를 노골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자신의 비전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가 마구잡이 관세 정책을 예고했지만, 미국의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선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낙관도 이런 측면에서 등장한다.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승자 전망 분분 = MAGA 의제를 둘러싼 갈등은 트럼프가 일단 실리콘밸리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된 듯하지만, 언제든 재점화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가 이번 논쟁을 ‘MAGA 내전’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말 영국 텔레그래프의 비즈니스 칼럼니스트 앤드류 올로프스키는 “MAGA와 실리콘밸리 간 전쟁에서 승자는 하나뿐”이라며 H1-B 비자 갈등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이 될 것이고, 이 싸움이 전통적 지지층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이유로는 우선 트럼프가 자신의 승리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승리로 간주한다는 점을 들었다. 트럼프는 세계화가 불가피하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정치 대화와 기관에 다시 끌어들인 데 책임이 있으며, 스스로의 사법 리스크에도 공화당의 도움 없이 혼자 맞섰다는 것이다.

올로프스키는 “그(트럼프)를 진정한 역사적 인물로 만드는 이유는 세계화에 대한 그의 거부”라며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유무역이 가족과 지역사회에 자존감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없애면서 지역사회를 공동화했다고 주장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이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링은 블록체인, 메타버스, 웹 3.0이 아니라 국방과 인프라에 있다며 이제 미 우선주의자들이 실리콘밸리에 그들이 무엇을 내줄 수 있을지를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처럼 트럼프가 자신의 실제 권력이 노동자 계층의 지지에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기에 일론 머스크를 위시한 실리콘밸리 진영이 공화당 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매력이 MAGA 의제를 영구적으로 변화시켰을 수 있으며, 실용주의자인 트럼프가 자신의 캠프를 오른쪽으로 끌고 가는 대신 중앙으로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주 빙엄턴 대학교의 도널드 니먼 교수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과거보다 더 광범위한 연합을 구성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이는 갈등의 가능성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니먼은 “(트럼프가) 그를 백악관으로 복귀시킨 것은 경제 문제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테크 부문을 공격하는 것은 나쁜 정치”라고 말했다.

또 이번 논쟁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가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비즈니스 친화적 실용주의 노선을 탈지 ‘미국 순혈주의’에 매몰될지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정치 분석가 플라비오 히켈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적 MAGA와 빅테크 MAGA 간의 최근 설전은 MAGA 운동의 미래를 둘러싼 오랜 싸움의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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