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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과학기술혁신의 요람, ‘중점실험실’ 현장을 가다
분류 주간무역뉴스
출처
등록일 2025-09-01
조회수 8
내용

[박승찬의 차이나 포커스(70)]


 
중국 과학기술혁신의 요람, ‘중점실험실’ 현장을 가다

 

 
지난 1월 딥시크 충격과 7월 방영된 ‘공대에 미친 중국’이라는 KBS 다큐 인재전쟁이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중국과학기술과 첨단산업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첨단기술 굴기와 공대 선호 현상은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물이다.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은 1978년 덩샤오핑의 ‘과학기술은 제일의 생산력(科技是第一生力)'과 1995년 장쩌민의 과학기술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의 국가발전 대전략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과학기술 혁신이 국가운명과 발전의 근간이라는 명제 아래 막대한 R&D 예산지원과 우대정책을 통해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왔다. 

 
중국과학기술의 눈부신 도약의 배경에는 1984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의 산학연 사업모델인 중국 특유의 실험실(Lab)의 특징과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자싱=신화/뉴시스] 중국 내에서 산학연 모델의 성급 중점실험실로 R&D 성과와 기술산업화를 가장 역동적이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저장성 실험실 모델’이다. 사진은 지난해 저장성 자싱시 난후구 자싱과학기술성에 위치한 스마트 물류 로봇 작업장.


 

●국가실험실과 국가중점실험실 차이는?

 
중국의 과학기술 실험실은 크게 국가실험실-국가중점실험실-중앙과 지방정부가 공동 구축(省部共建)한 중점실험실-성급 중점실험실의 4단계로 나누어 운영 관리되고 있다. 

 
흔히 ‘국가실험실’과 ‘국가중점실험실’을 혼용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격히 두 실험실은 자금지원과 운영모델, 관리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중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설립된 시기를 보면 국가중점실험실(1984년)이 국가실험실(2000년)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실험실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사실은 정반대다.

 
우선 국가실험실은 중국 실험실 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국가현대화 건설과 핵심기술 자립화를 위해 2000년부터 공식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인재유치 및 R&D 비용 대부분을 국가가 부담한다. 

 
기초과학, 6G통신기술, 양자정보, 반도체 등 국가생존의 핵심무기(国之重器)로 불리는 분야인 만큼 매우 엄격한 관리와 절차,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현재 중국 내 국가중점실은 중관춘 국가실험실, 창장실험실 등 총 20개가 운영 혹은 시범 운영 중이다. 

 
한편, 국가중점실험실은 1984년 설립 초기 세계 선진국과의 과학기술 격차를 줄이고, 기술 기반의 국가성장을 위해 교육부 및 중국과학원 산하 연구소 자원을 토대로 시작돼 기초연구 및 응용성 기초연구에 집중했다. 

 
중점실험실은 기초 및 응용연구를 통해 혁신성과 및 독자적 지식재산권 확보를 위한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AI, 반도체, 양자정보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 기술과 미중기술패권이 심화되면서 기초과학(과학기술부)과 산업기술(공업정보화부)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운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국가중점실험실은 국가실험실과 달리 중앙 지원 예산을 기본으로 연계된 대학 및 기업들이 관련 비용을 매칭으로 부담해 운영하는 구조다. 현재 중국 내 성급 및 시급 실험실까지 합치면 약 700여 개 중점실험실이 운영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중점실험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중국 실험실 시스템과 생태계에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복영역투자, 실험실 운영관리의 비효율성, 정부의 지나친 간섭에 따른 연구자들의 자율성 침해, 우수인재 부재와 과학자의 지역간 이동 제약, 경쟁메커니즘 부재의 문제가 나타나며 국가예산낭비와 기술혁신 정체 이슈가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화가 가속화되면서 중점실험실에 대한 구조개편과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IT, 해양, 에너지, 우주항공, 반도체 등 중대 혁신 분야를 중심으로 국가중점실험실의 재구성과 전략적인 과학기술역량을 키우기 위한 효율적인 상호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나아가 대학 및 연구소 중점실험실에 대한 R&D 비용 자주권을 확대하는 정부 안건도 심의 통과되면서 연구자들에 대한 자율권도 확대됐다. 

 
특히, 중복연구와 투자를 방지하고, 지역 클러스터의 장점과 특화된 기술분야의 산학연 연구를 핵심으로 하는 성급 중점실험실이 새롭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장쑤성 난징의 즈진산실험실(紫金山实验室)은 화웨이와 6G 반도체칩 공동연구, 상하이자동차그룹(上汽集团)과 스마트 커넥티드카 공동연구 그리고 항저우 즈장실험실(之江实验室)이 알리바바와 공동으로 AI 오픈소스 플랫폼 구축도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 이후 생겨난 성급 ‘중점실험실(Sate Key Lab)’은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Berkeley Lab)와 벨랩(Bell Lab),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와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 등 선진국 연구기관을 벤치마킹해 중국 특색을 가미해 만든 기관이다. 

 
핵심 첨단기술의 기초연구에서부터 기술 인큐베이터, 기술상용화를 지원하는 곳으로 국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비슷한 성격의 연구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중점실험실 트렌드는 ‘저장성 모델’

 
중국 내에서 산학연 모델의 성급 중점실험실로 R&D 성과와 기술산업화를 가장 역동적이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저장성 실험실 모델’이다. 필자가 중국 과학기술 중점실업실 현황과 생태계 조사를 위해 저장성을 방문한 이유였다. 

 
특히, 항저우·원저우·닝보·조우산의 저장성 4개 도시를 선정한 이유는 이른바, ‘목을 조르는 기술(卡脖子技术; 선진국 핵심기술과 설비·장비 의존도가 높은 기술)’의 분야별로 특화된 성급 10대 중점실험실이 있기 때문이다. 

 
4개 도시별로 보면, 항저우에 총 7개의 실험실이 있다. ①AI,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에 특화된 즈장실험실 ②AI, 머신비전, 자율주행, 양자컴퓨팅 중심의 후판실험실(湖畔实验室) ③미생물, 백신, 암세포 등 바이오 중심의 서호실험실(西湖实验室) ④정신 및 면역질환, 난치병 치료의 첨단의학에 특화된 랑주실험실(良渚实验室) ⑤항공소재, 항공비행 등 항공산업 중심의 텐무산실험실(天目山实验室) ⑥신재생에너지 자원기술 중심의 바이마후 실험실(白马湖实验室) ⑦현대화된 농업기술에 특화되어 있는 시앙후실험실(湘湖实验室)이다. 

 
닝보에는 ⑧첨단 신소재, 고분자 관련 기초 R&D와 산업화에 특화된 융장실험실(甬江实验室)이 있고, 조우산에는 ⑨해양환경, 해양녹색자원 등 해양첨단기술 중심의 둥하이실험실(东海实验室), 원저우에는 ⑩시각 및 뇌질환에 특화된 어우창장 실험실(瓯江实验室)이 배치되어 있다.

 
중점실험실 앞에 붙은 이름은 대부분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강·호수(즈장·시앙후·어우창장·융장)와 산(텐무산), 지명(량주) 등 저장성의 자연환경, 역사의 고유명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필자가 방문한 즈장실험실과 융장실험실은 규모나 연구 설비면에서 우리 국책연구소와 비교가 되질 않을 정도다. 

 
특히, 2017년 9월 저장성 최초의 성급 중점실험실인 즈장실험실은 저장성 정부가 50억 위안(약 1조 원)을 3년간 나누어 지원해 해외인재유치 및 첨단기술설비와 장비를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항저우 시정부와 저장대학, 알리바바 그룹의 R&D 매칭 비용까지 합치면 실제 사업비는 더욱 커진다. 즈장실험실에 근무하는 연구자가 1700명이 넘으며 35세 이하 연구인력이 70% 이상 차지한다. 

 
2024년 한국의 과학기술 관련 25개 국책연구기관 총사업비가 1조 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을 때 중국은 중앙·지방정부·기업들 연합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과학기술발전은 우수한 연구인력과 막대한 R&D 투자에 달려 있다. 새 정부의 R&D 투자확대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산학연이 함께 공생하는 과학기술 생태계 구축과 우수인재 유치, 파격적인 규제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박승찬 |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하며, 30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듀크대학 교환교수(2012년)를 지냈고, 미주리주립대학에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2023년)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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