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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내산 우대’ 내건 EU, 미중 패권전쟁 끼어드나
분류 주간무역뉴스
출처
등록일 2026-03-12
조회수 8
내용
전략 분야에 ‘메이드 인 유럽’ 촉진하는 산업정책 도입
중국 과잉생산·미국 우선주의 배제 노린 조항들 엿보여


 
미중 패권경쟁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이 전략산업 역내 생산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3월 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공공조달과 세제혜택·보조금 등의 산업지원에서 역내산 우대를 강화하는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IAA)을 발표하고 핵심 공급망의 외부 의존도를 줄일 것을 천명했다.

 
이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유럽안보조치(SAFE)와 같이 핵심 산업에서 유럽 역내 생산을 우대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미중 산업 경쟁에서 유럽이 생존하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될 위험이 있는 경제적 의존성을 극복하기 위한 산업 정책으로서 채택됐다.

 
그 가운데 EU 산업가속화법의 특징으로는 역내 경제 규모의 무려 14%에 달하는 2조3700억 유로의 회원국 공공조달 시장을 막대한 재정적 화력으로 삼아 역내 산업을 지원하고 첨단 분야로 이끌겠다는 야심이 꼽힌다. 

 
이 법안은 공공조달과 산업지원 수혜자 요건으로 EU 역내 생산과 탄소 저감에 관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럽 내에서 알루미늄을 제조하는 업체가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최소 25%의 저탄소·유럽산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보호받고 공공 보조금을 지원받는 산업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과 같은 에너지 집약 제조업과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자동차와 같은 클린테크, 그리고 자동차 부문이다.

 
본래는 인공지능이나 첨단 반도체 등 미래 전략 분야도 포함돼 있었으나, 이달 초 발표된 내용에는 빠졌다. 이번 법안 추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프랑스는 보건의료에서 디지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산업 분야를 포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쇠퇴한 산업, 재기할 수 있을까

 
스테판 세주르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이번 산업가속화법 발표 기자회견에서 EU의 제조업 쇠퇴를 한탄했다. 제조업 부문은 2024년 EU 전체 GDP의 14.3%를 차지했는데, 이는 2000년의 17.4%에서 3%p 이상 감소한 것이다.

 
이에 산업가속화법은 2035년까지 역내 GDP의 제조업 비중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향후 5년에서 10년 동안 역내 자동차 부문에서 6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을 방지하고 다른 부문에서 약 15만 개의 일자리를 보존하거나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이 GDP의 4.5%에 달하는 산업 보조금을 통해 저가 밀어내기 수출 공세를 펴고 미국이 전략산업에서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유럽 산업계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몫했다.

 
최근 중동의 지정학적 혼란 또한 EU가 이번 법안을 신속히 추진하고자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러우전쟁과 대러제재가 이어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국제유가와 에너지 비용이 크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청정에너지 투자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유럽 풍력발전협회 윈드유럽의 틴 반 데어 스트레이튼 CEO는 산업가속화법 제정을 환영하는 성명에서 유럽의 에너지 취약성을 강조하면서 “EU는 풍력 에너지를 전략적 부문으로 올바르게 식별했다”며“풍력 분야의 산업 리더십은 유럽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로펌 래덤앤왓킨즈는 “산업가속화법은 에너지 집약 산업과 넷제로 기술 제조업체, 외국인 투자자 및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EU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종 채택된 문안이 유럽 의회와 이사회에서의 협상 후 위원회의 제안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입법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뤼셀=AP/뉴시스] 지난 3월 4일 유럽연합(EU)이 공공조달과 세제혜택·보조금 등의 산업지원에서 역내산 우대를 강화하는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IAA)을 발표하고 핵심 공급망의 외부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전날인 3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정상회의 상임의장, 키리아코스 피에라카키스 유로그룹 의장이 회동하는 모습.


 


 

중국 외 국가 어디까지 견제? ‘유럽산’ 요건 두고 회원국 간 이견 분분
‘메이드 인 유럽’ 노리는 프랑스 vs. ‘메이드 위드 유럽’ 주장하는 독일


 
●견제 범위 두고 의견 차 커

 
로이터통신은 이번 소식을 보도하면서 EU의 산업가속화법이 중국에 대한 산업 의존도 억제를 위해 제정된 것이라고 짚었다. 

 
산업가속화법에는 일부 문구가 중국을 겨냥해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정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의 기업이 1억 유로 이상을 투자할 경우에 제한을 두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1억 유로 이상의 외국 자본이 유럽 기업들과 합작 투자를 할 때 지식 재산 접근과 유럽인 고용, 현지 파트너에 대한 노하우 전수 등을 강제한다. 이를테면 특정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의 투자자가 참여할 경우 해당 기업의 고용 지분 50%는 EU 근로자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식이다.

 
실제로 기자회견에서 세주르네 부위원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곧 클린테크 산업의 100%가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 분명하다”며 “앞으로 몇 년 안에 시멘트, 철강 산업이 완전히 오프쇼어링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다만, 중국만이 견제 대상은 아니다. EU 역내에서는 중국 외에도 어디까지를 ‘우대’ 범위에서 배제할 것인지를 두고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EU 산업가속화법은 본래 지난해 말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럽산의 범위, 품목별 역내 생산 부가가치 기준, ‘신뢰할 수 있는 해외 파트너(EU 역내와 동일한 대우)’ 기준 등을 놓고 진통을 겪으며 여러 차례 좌절을 겪었다. 향후 법안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도 회원국 간 이견은 큰 변수다.

 
특히 세계화된 제조업 공급망을 가지고 있는 독일과 자국 농업 생산이 큰 프랑스 간의 입장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폭넓은 유럽산 우대를 지지하지만, 독일은 무역상대국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스웨덴과 체코 또한 이번 법안이 오히려 유럽 역내 투자를 억제하고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럽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브뤼겔은 “메이드 인 유럽 요구사항은 수출 지향 산업의 비용을 증가시켜 국내 산업 변혁과 궁극적으로 청정 에너지 전환을 늦출 수 있다”며 “유럽의 청정기술 공급망은 이미 외국 전문 지식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를테면 EU 배터리 셀 제조시설 80%는 전기차를 제조하는 유럽 자동차 업체를 위해 한국 기업들이 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영국 왕립 채텀하우스의 어소시에이트 펠로우인 세바스티앙 마이야르 저널리스트는 “유럽 우대의 범위와 규모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EU 접근 방식에 깊은 정치적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메이드 인 유럽’이냐 ‘메이드 위드 유럽’이냐에 대한 논쟁의 답은 아마도 둘의 혼합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비록 그 범위가 제한적일지라도, 차별적인 조치는 EU의 현재 투자 법적 틀에 큰 변화를 가져오며, 나아가 세계화와 비즈니스 환경을 다루는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며 “예를 들어, 이 법안에 따르면 전기차가 공공 보조금을 받으려면 역내에서 조립돼야 하며 상당 부분(배터리를 제외하고 최소 70%)의 유럽산 부품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역내 무역 파트너들에게 산업가속화법은 일종의 정교한 보호무역주의처럼 보일 것”이라며 “일부 EU 회원국들은 이를 기업가의 자유를 저해하는 데에 비싸고 새로운 관료주의적 장애물을 부과하는 것처럼 본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쟁점은 어떤 비EU 국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EU 제품과 동등하게 해당 법안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지가 되고 있다. EU 집행위는 영국, 캐나다, 미국, 한국 등 EU의 무역협정 파트너들과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당사국들이 이러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EU 집행위는 상대국이 EU 기업의 국내 시장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지를 평가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나 ‘바이 아메리카’를 내세우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에서 빠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EU 산업가속화법은 특정 부문에서 자국의 공공조달 접근을 제한하는 국가들에게 ‘상호주의’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세주르네 부위원장은 “그들이 우리 시장에 통합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의 시장에 통합되기를 기대한다”며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우리 경제 안보에 위험을 초래하는 사람들은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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