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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주의 무역인] 조재곤 농업회사법인 영풍 대표
분류 주간무역뉴스
출처 힌국무역신문
등록일 2026-07-23
조회수 25
내용

 

[금주의 무역인] 조재곤 농업회사법인 영풍 대표
역발상으로 120개국 뚫은 K-푸드 개척자

 


1990년대 초반 우리 음식을 수출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국 음식을 외국인이 먹겠느냐’는 비아냥이었다. 

 
조재곤 농업회사법인 영풍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나라 사람이 햄버거나 피자를 언제부터 즐겼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묵묵히 상품 개발에 매진했다. 그렇게 탄생한 수출용 부침개·떡볶이 등은 어느새 전 세계 120개국에 수출된다. 

 
전형적인 ‘역발상’ 결과다. 물론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높은 벽도 체감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설비를 직접 설계했고, 급기야는 수출 시장을 위해 세계 최초의 상온 컵떡볶이 개발에까지 이르렀다.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열정’의 결과물인 셈이다. 

 
조 대표는 ‘10년 내 수출 10억 달러’를 목표로 제시하며 식품산업도 반도체·AI·로봇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조재곤 영풍 대표는 세계 최초의 상온 컵떡볶이 ‘요뽀끼’를 개발해 K-푸드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사진=영풍]


 

● 식품을 알게 된 10여 년

 
창업 전 대기업군 식품회사에서 11년 동안 근무했다. 운 좋게도 생산·관리·기획은 물론 공장 건설본부까지 다양한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식품회사 경영을 위한 토대를 닦은 셈이다. 대학 전공은 식품산업공학이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덕분에 훗날 급속냉동식품 설비를 직접 개발했다. 

 
조 대표는 “생산·위생·관리 등 식품회사가 갖춰야 할 기본은 갖춘 상태였다”고 말했다.

 
창업 배경이 흥미롭다. 말 그대로 역발상이다. 다른 나라 식품은 활발하게 수출되는데 우리만 유독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일본 식품 전시회에서 확인했다. 미국·유럽·동남아 식품들은 모두 찾을 수 있는데 한국 식품이 안 보였다. 

 
조 대표는 국내에 급속도로 확산하는 햄버거·피자를 사례로 들며 “한국은 왜 식품 수출을 못 할까, 왜 안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내수에 집중하던 식품회사를 퇴사하게 된 이유다.

 
● 맨땅에서 시작한 식품 수출

 
1993년 8월 K-식품 수출을 기치로 내세우며 영풍을 창업했다. 당시 식품 수출 실적은 미미했다. 기껏해야 해외 한인 마트에서 김치 정도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를 기회로 봤다. 

 
조 대표는 “누군가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도 사업이겠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고 시장을 열어가는 방법도 있다”며 “저는 후자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첫 아이템은 돈가스였다. 당시 국내에서 일본에 돼지고기 생고기 수출이 꽤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수출된 생고기의 용처가 궁금했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일본에서는 돼지고기가 돈가스로 활용됐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돈가스와 달리 두툼하게 들어갔다. 

 
조 대표는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 생산해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첫 개발품을 들고 일본 식품 전시회를 두드렸다. 당시만 해도 인건비 우위로 경쟁력이 높았고, 실제로 수출 물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구제역이 덮치면서 수출길이 막힌 것이다.

 
조 대표는 바로 플랜B를 가동했다. 돈가스로 개척한 일본 시장에서 바로 ‘부침개’로 시장을 노크했다. 

 
이참에 전통 한국 음식을 수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부침개를 시작으로 떡볶이·잡채 등 냉동식품을 하나둘 일본 시장에 내놓았다.

 
● 설비까지 직접 만든 기술력

 
영풍은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배경으로 식품산업공학을 전공한 조 대표의 열정을 꼽을 수 있다. 

 
냉동식품은 해동해도 갓 구운 것처럼 맛을 내야 하지만 당시 냉동기술은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다. 집에서 만든 부침개를 냉동했다가 얼마 후 데워 먹으면 처음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 대표는 “1990년대만 해도 냉동식품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부침개를 냉동식품으로 만든다는 상상도 안 했던 시절”이라며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급속동결 기술이 필요해 직접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 설계에 나섰고, 1~2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급속냉동기를 개발했다. 영풍은 기계와 공정 모두에 대해 특허를 갖고 있다. 

 
단기간에 기술이 완성됐느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반도체가 메모리 용량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듯 식품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며 “지금까지도 이 기술은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세계 최초 상온 컵떡볶이 탄생

 
영풍의 수출 효자 상품인 세계 최초 상온 컵떡볶이의 개발과정이 흥미롭다. 

 
수출국과 물량이 늘어나면서, 냉동 컨테이너와 냉동창고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컸다. 수출액은 높았지만, 운영비가 너무 많이 소요된 것. ‘보관과 유통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컵떡볶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대표는 “외국인이 떡볶이를 먹고 싶어도 떡·고추장 그리고 다양한 부재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매우 어렵다”며 “외국인이 맛있으면서 간편하게 먹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상온 컵떡볶이 ‘요뽀끼(yopokki)’가 탄생했다. 

 
‘개발 고충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에디슨이 창고에서 전기를 개발했던 것처럼 개발하고 나면 쉬워 보인다. 과정은 굉장히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됐는데 저희 제품이 인기를 끌자 모방 제품이 많이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풍은 약 120개국에 K-푸드를 수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UAE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적인 식품 박람회인 ‘GULFOOD’의 회사 부스에서 조재곤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바이어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영풍]

▲영풍은 약 120개국에 K-푸드를 수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UAE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적인 식품 박람회인 ‘GULFOOD’의 회사 부스에서 조재곤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바이어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영풍]


 

● 10년 안에 수출 10억 달러 목표

 
현재 영풍은 떡볶이 등 K-푸드를 약 120개국에 수출한다. 중소기업으로는 절대 쉽지 않은 업적이다. 

 
실제로 난관도 많았다. 일본에 주력할 때는 한일 정치 갈등으로 수출급감을 겪었고, 중국에서는 한한령 변수를 맞았다. 

 
그때마다 수출 지역을 넓혔다. 시장개척단을 따라다녔고, 비용 부담이 클 때는 타 회사 부스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둘 거래처를 늘린 것이다. 

 
한류 열풍은 영풍의 수출 열의에 날개를 달았다. K-브랜드가 주목받으면서 영풍의 제품들이 대표 K-간식으로 부상한 것이다.

 
조 대표는 “10년 안에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맛·품질 그리고 안전성에 대해 끊임없는 개발을 이어간다. 

 
동시에 정부의 식품업종에 관한 관심을 당부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정부가 첨단산업 지원에만 집중하는 것이 식품업계 대표로서 사업 확장에 한계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신설되는 첨단지구 안에는 식품 업종 입주가 막히는 것을 꼽았다. 

 
조 대표는 “산업구조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듯이 바구니에 첨단만 담으면 산업 다각화는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명 영풍(永豊)은 ‘오랫동안 풍성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 

 
글로벌 브랜드가 된 ‘요뽀끼(yopokki)’는 영풍의 영문 이니셜 앞 두 글자인 ‘yo’와 ‘po’에 떡볶이의 뒷부분 발음을 결합했다. 

 
조 대표는 회사의 모토로 ‘멀리 오래도록 인류에게 풍요롭고 이로운 음식을 제공한다’라고 소개하며 “영풍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식품회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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