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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시래 대기자의 시선] 워싱턴이 탐내는 한국 반도체의 ‘AI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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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주간무역뉴스
출처
힌국무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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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7-23
조회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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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시래 대기자의 시선] 워싱턴이 탐내는 한국 반도체의 ‘AI 세금
시장의 힘과 비교 우위론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로벌 무역 시장의 이면에는, 언제나 강력한 국가 권력과 자국 우선주의라는 '날 것의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 서울과 워싱턴의 통상 관료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기묘한 소문은 이러한 냉혹한 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의 릭 스위처 등 고위 관료들이 한국 측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린 막대한 이익의 ‘일부’를 미국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구매가 없었다면 한국 메모리 기업들의 화려한 부활도 없었을 테니, 그 이익의 기여분을 환수하겠다는 대담한 논리다. 정부의 공식 확인은 없었지만, 이 유령 같은 주장에서 우리는 1980년대 미일 반도체 전쟁의 짙은 향기를 맡는다. 당시 워싱턴은 자국 산업의 무능을 뒤로한 채, 미국 시장을 장악해 가던 일본 기업들에게 불공정 무역 프레임을 씌웠다. 슈퍼 301조와 반도체 협정을 통한 강제 점유율 할당으로 일본 반도체를 주저앉혔고, 그 반사이익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기업들에게 흘러갔다. 오늘날 워싱턴의 표적이 된 한국 반도체 신화는 바로 미국이 일본을 주저앉힌 대가로 태어난 자식인 셈이다. 또 2000년대 대만 LCD 패널 산업이 겪은 반독점 조사와 천문학적인 벌금 폭탄 역시 같은 궤를 같이한다. 자유 무역을 부르짖던 미국은 해외 기업이 특정 전략 산업에서 압도적인 이익을 독점할 때 그것을 결코 ‘시장의 승리’로 두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자국 패권을 위협하는 ‘정치적 문제’로 재규정되며, 그 순간 무역 장벽과 사법 무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동된다. 그렇다면 왜 워싱턴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90%를 장악한 한국 기업들에게 당장 도끼를 휘두르지 않을까? 여기에는 ‘비용 전가 능력(Cost Pass-through)’의 경제학이 작동하고 있다. 지금의 AI 붐은 거대한 골드러시다. 엔비디아와 빅테크들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기며 HBM 비용을 다운스트림(하류 산업)에 충분히 전가하고 있다. 당장은 비싸더라도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한국 기업들의 목을 비틀기보다, 그들의 자본을 미국 영토 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텍사스와 인디애나의 반도체 공장들이 완공되어 공급망 안보가 완성될 때까지는 유인책을 쓰는 것이 정무적으로 이롭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취약한 균형은 영원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위험의 임계점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수익률(ROI)이 꺾이는 순간이다. 만약 AI 서비스의 수익화가 지연되어 ‘AI 거품론’이 현실화되거나 경기 둔화로 비용 전가 메커니즘이 고장 난다면, 실적 압박에 직면한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즉시 워싱턴의 복도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 메모리의 독점이 미국 AI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미국 정책 결정층이 공급망 확보라는 유인책에서 독점 금지라는 채찍으로 기조를 바꾸는 것은 한순간이다. 반도체법(Chips Act)의 초과 이익 환수 가이드라인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거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새로운 수입 규제로 한국 반도체의 ‘AI 세금’을 거둬가려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갈등의 전선은 이제 공장 건설을 넘어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단계로 이동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과 정부는 미국 시장이 가장 순수한 자본주의로 굴러간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워싱턴이 움직이는 방식은 철저히 자국 기업의 이익 보호와 패권 유지에 기반한다. 이 거대한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단순히 "상업적 원칙을 지키라"는 도덕적 훈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 현지 공장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이 ‘미국 AI 안보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동시에, 정치적 개입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독점과 폭리’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유연하고 전략적인 가격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통상의 역사에서 규칙을 만드는 자는 언제나 시장의 승자가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자였다. 한국 반도체가 마주한 진짜 위기는 기술의 격차가 아니라 정치적 방어력의 격차에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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